한자 秉에 관한 단어는 모두 44개 입니다.
[🌏 단어 및 뜻 풀이] 한자 秉에 관한 단어는 모두 44개
- 병거 (秉炬) : 화장(火葬)할 때에 도사가 횃불을 들고 법어(法語)를 하는 의식.
- 병권 (秉權) : 권력을 잡음.
- 병법 (秉法) : 불전(佛前)에서 예식을 집행하는 사람의 직명.
- 병월 (秉鉞) : 무장이 병권을 잡음.
- 병이 (秉彝) : 타고난 천성을 그대로 지킴.
- 병정 (秉政) : 정권을 잡음.
- 병촉 (秉燭) : 촛불을 손에 잡는다는 뜻으로, 촛불을 켬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.
- 병축 (秉軸) : 수레의 굴대를 잡는다는 뜻으로, 정권을 잡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.
- 권병덕 (權秉悳) : 독립운동가(1867~1944). 호는 청암(淸菴)ㆍ정암(貞菴)ㆍ우운(又雲). 3ㆍ1 운동에 민족 대표 33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참여하였다. 저서에 ≪조선 총사(朝鮮總史)≫, ≪이조 전란사(李朝戰亂史)≫, ≪궁중 비사(宮中祕史)≫ 따위가 있다.
- 김병조 (金秉祚) : 독립운동가ㆍ목사(1876~1947). 호는 일재(一齋). 독립 선언서에 서명한 33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, 만주에서 ≪한족신문(韓族新聞)≫을 발행하였으며, 8ㆍ15 광복 후 북한에서 조만식과 함께 조선 민주당을 창설하고, 지하 운동을 벌이다가 시베리아에 유배되어 죽었다.
- 남병길 (南秉吉) : 조선 후기의 천문학자ㆍ수학자(1820~1869). 자는 자상(字裳). 후명(後名)은 상길(相吉). 호는 혜천(惠泉)ㆍ육일재(六一齋). 남병철의 아우로 수찬, 형조 판서 등을 거쳐 좌참찬에 이르렀다. 저서에 ≪시헌기요≫, ≪성경(星鏡)≫ 따위가 있다.
- 남병철 (南秉哲) : 조선 후기의 문신(1817~1863). 자는 자명(子明)ㆍ원명(元明). 호는 규재(圭齋)ㆍ강설(絳雪)ㆍ구당(鷗堂)ㆍ계당(桂堂). 이조 판서, 대제학을 지냈으며 박학하고 문장에 뛰어났다. 수학과 천문학에도 뛰어나 수륜(水輪), 지구의 따위를 만들었다. 저서에 ≪규재집(圭齋集)≫, ≪추보속해(推步續解)≫ 따위가 있다.
- 박두병 (朴斗秉) : 기업인(1910~1973). 1952년에 동양 맥주 회사를 창립하여 기업을 육성하였고, 대한 상공 회의소 회장, 아시아 상공 회의소 연합회 의장 및 종신 명예 회장, 주한 벨기에 명예 영사 및 총영사 따위를 지냈다.
- 병직랑 (秉直郞) : 조선 시대에 둔, 정오품 종친의 품계. 고종 2년(1865)에 문관 품계인 통선랑으로 통일하였다.
- 손병희 (孫秉熙) : 항일 독립운동가(1861~1922). 자는 응구(應九)ㆍ규동(奎東). 호는 의암(義菴). 1882년 천도교에 입교하여 1887년에 제3대 대도주(大道主)가 되었다. 3ㆍ1 운동 때는 민족 대표 33인의 한 사람이었다.
- 송병선 (宋秉璿) : 조선 고종 때의 문신(1836~1905). 자는 화옥(華玉). 호는 연재(淵齋). 좨주를 거쳐 대사헌을 지냈다. 을사조약이 체결되자, 일본을 경계할 것을 상소하고 고향에 가서 자살하였다.
- 송병준 (宋秉畯) : 조선 고종 때의 친일 정치가(1858~1925). 이용구 등과 일진회를 조직하였고, 농상공부대신ㆍ내부대신을 지내면서 조선과 일본의 합방을 주장하였다.
- 안병찬 (安秉瓚) : 독립운동가ㆍ변호사(1854~1921). 호는 심전(心田).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의병을 일으켰다가 투옥되었다. 3ㆍ1 운동 후 만주로 망명, 고려 공산당 중앙 위원으로 활약하였다.
- 유병기 (劉秉淇) : 대한 제국 때의 의병장(1883~1910). 융희 원년(1907)에 한일 신협약이 체결되자 의병을 일으켜 담양ㆍ영광ㆍ장성 등지에서 활약하다가 1909년에 담양 싸움에서 부상을 입고 도피 중 체포되었다.
- 유병우 (柳秉禹) : 대한 제국 때의 의병장(1849~1910). 호는 해사(海史). 1906년 하동에서 다른 동지들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순천을 점령하였으나,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다 순국하였다.
- 이병기 (李秉岐) : 시조 시인ㆍ국문학자(1891~1968). 호는 가람(嘉藍). 시조 부흥 운동에 앞장서서 시조를 이론적으로 체계화하는 데 노력하는 한편, 창작에도 관여하여 시조의 현대화에 기여하였다. 저서에 ≪가람 시조집≫, ≪국문학 개론≫ 따위가 있다.
- 이병모 (李秉模) : 조선 후기의 문신(1742~1806). 자는 이칙(彝則). 호는 정수재(靜修齋). 1773년 문과에 급제하여 경기도 암행어사를 지냈다. 1794년 우의정이 된 후 좌의정을 거쳐 1797년 영의정이 되었다. 정조의 명에 의하여 ≪삼강행실도≫와 ≪이륜행실도≫를 편찬했다.
- 임병찬 (林秉瓚) : 대한 제국 때의 의병장(1851~1916). 자는 중옥(中玉). 호는 돈헌(遯軒).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스승인 최익현과 함께 의병을 모아 일본군과 싸우다가 쓰시마로 유배되었고, 그 후 다시 항일 구국 투쟁을 계속하다 거문도로 유배되어 병사하였다.
- 전병순 (田秉淳) : 조선 후기의 학자(1816~1890). 자는 이숙(彝叔). 호는 부계(扶溪)ㆍ겸와(謙窩). 홍직필(洪直弼)의 문하에서 배워 성리학에 일가(一家)를 이루었으며, 서학(西學)을 학문적으로 배척하는 데 힘썼다.
- 정병하 (鄭秉夏) : 구한말의 개화파 문신(1849~1896). 자는 자화(子華). 호는 남고(南皐). 청나라와의 외교에 활약하고 김홍집의 삼 차 내각에 입각하여 개화 정책에 힘썼으나, 고종의 아관 파천 때에 난민에게 피살되었다.
- 조병갑 (趙秉甲) : 조선 고종 때의 탐관(?~?). 고종 29년(1892) 고부 군수로 부임하여 만석보(萬石洑)를 증축하면서 임금을 주지 않았으며, 부친의 비각을 세운다는 명목으로 금품을 강제로 징수하는 따위의 온갖 폭정을 자행하였다. 그의 폭정은 동학 농민 운동을 일으킨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.
- 조병덕 (趙秉悳) : 조선 후기의 문신ㆍ학자(1800~1870). 자는 유문(孺文). 호는 숙재(肅齋). 이조 참의, 호조 참판을 지냈다. 뛰어난 유학자로 문하에 많은 제자를 길러 내었으며, 저서에 ≪숙재집≫이 있다.
- 조병세 (趙秉世) : 조선 고종 때의 문신ㆍ순국열사(1827~1905). 자는 치현(穉顯). 호는 산재(山齋). 고종 26년(1889)에 우의정이 되었고, 갑오개혁 이후 은거하였다가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조약의 무효를 상소하였으나, 뜻을 이루지 못하자 자결하였다.
- 조병식 (趙秉式) : 조선 고종 때의 문신(1823~1907). 자는 공훈(公訓). 시호는 문정(文靖). 1888년 러시아 대표 베베르와 한로 육로 통상 장정을 체결하였다. 함경도 관찰사 때 방곡령을 선포하였고, 동학교도를 탄압하여 동학 농민 운동의 원인을 제공하였다. 후에 황국 협회를 배후에서 조종하여 독립 협회 타도에 앞장섰다.
- 조병준 (趙秉準) : 독립운동가(1862~1931). 자는 유평(幼平). 호는 국동(菊東).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유인석 휘하에서 평안도 의병장으로 일본군과 싸웠으며, 만주에서 항일 투쟁을 계속하다가 병사하였다.
- 조병직 (趙秉稷) : 조선 시대의 문신(1833~1901). 자는 치문(稚文). 호는 창혜(蒼惠). 고종 때 외교를 맡아 일본의 침투를 막기 위하여 노력하는 등 사대당(事大黨)으로 활약하였다. 청일 전쟁 때 일본의 압력으로 실각하였다가, 아관 파천 때 친러파에 가담하여 법무대신 등을 지냈다.
- 조병창 (趙秉昌) : 구한말의 문신(?~1883). 흥선 대원군의 심복으로, 1876년 조정 문란 혐의로 유배되었다가 석방되었다. 임오군란이 일어난 다음 해에 배후 조종 혐의로 처형되었다.
- 조병현 (趙秉鉉) : 조선 순조ㆍ헌종 때의 문신(1791~1849). 자는 경길(景吉). 호는 성재(成齋)ㆍ우당(羽堂). 예조ㆍ이조ㆍ공조 판서를 지냈다. 풍양 조씨 세도 정치의 중심인물로, 천주교 탄압을 감행하여 많은 신부와 신자를 죽였다. 이후 안동 김씨 일파의 탄핵을 받고 처형되었다.
- 채병덕 (蔡秉德) : 군인(1914~1950). 일본군 육군 소좌로 8ㆍ15 광복을 맞이하여 국방 경비대를 창설하는 데 참여하였으며, 6ㆍ25 전쟁 때 육해공군 총사령관으로 전투를 지휘하다가 하동 전투에서 전사하였다.
- 초병정 (焦秉貞) : 중국 청나라의 화가(?~?). 궁정 화가로 화훼와 인물화에 뛰어났고, 서양 선교사에게 서양의 원근법을 배워 응용하였다. 작품에 <패문재경직도(佩文齋耕織圖)> 따위가 있다.
- 홍병기 (洪秉箕) : 독립운동가(1869~1949). 호는 인암(仁菴). 3ㆍ1 운동 민족 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, 1894년에 동학 농민 운동에 가담하였으며 3ㆍ1 운동 때에는 천도교 대표로 독립 선언서에 서명하였다가 체포되어 2년간 복역하였다. 출옥 후 만주로 건너가 1926년에 고려 혁명당을 조직하여 고문으로 활약하였다.
- 병권하다 (秉權하다) : 권력을 잡다.
- 병월하다 (秉鉞하다) : 무장이 병권을 잡다.
- 병이지성 (秉彝之性) : 타고난 천성.
- 병이하다 (秉彝하다) : 타고난 천성을 그대로 지키다.
- 병절교위 (秉節校尉) : 조선 시대에 둔, 종육품 하(下) 무관의 품계. 조선 세조 12년(1466)에 수의교위를 고친 것으로, 각 도의 병마절제도위나 감목관 따위가 있었다.
- 병촉하다 (秉燭하다) : (비유적으로) 촛불을 켜다. 촛불을 손에 잡는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.
- 병축하다 (秉軸하다) : (비유적으로) 정권을 잡다. 수레의 굴대를 잡는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.
- 병필지임 (秉筆之任) : 사필(史筆)을 잡은 소임(所任)이라는 뜻으로, 예문관의 검열(檢閱)을 이르던 말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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